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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행정 실패, 두 번 죽는 주민

장벽에 갇힌 서울의 게토…사업성 없는 시 계획에 주민 혼란만

이용우 기자 ywl@sisajournal-e.com

"여긴 거지 동네야. 10년 째 장벽에 갇혀 있어."

서울 서부이촌동에 밤이 오면 어두워진 동네 앞으로 남산타워와 고층 건물들이 도시의 빛을 발했다. 그나마도 서부이촌동과 용산을 구분 짓는 4m 높이 장벽에 가려 건물 끝 선만 보였다. 행정 실패를 가리는 장막은 서부이촌동 앞으로 1km 이상 이어졌다. 서부이촌동 주민은 "국제업무기능을 갖춘 대규모 복합단지를 건설한다는 용산 개발이 무산되면서 이 동네도 함께 죽었다"고 말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은 2013년 10월 최종 무산됐다. 용산 개발 바람이 사라진 뒤 철도정비창 부지(44만2000㎡)는 사람이 살지 않는 벌판이 됐다. 이곳에 장벽이 세워졌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서부이촌동은 거대한 장벽과 한강 사이에 갇혀 사람의 발길이 줄어드는 장소로 변했다 .

“여긴 거지 동네야.
10년 째 장벽에 갇혀 있어”

서울 시민은 이촌동을 들으면 보통 동부이촌동을 떠올린다. 이촌1동과 비교 대상으로 이촌2동을 서부이촌동으로 부른다. 길 하나를 두고 동부이촌동은 국내 최대 부촌으로, 서부이촌동은 서울 시민마저도 가본 적 없는 낙후지역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서부이촌동에서 50년 이상 살아온 김모(84) 할머니는 "이 동네는 거지 동네"라고 소개했다. 가게가 문을 닫고 부동산 거래가 중단됐다. 40년 이상 약국을 운영하는 홍모(82) 할머니도 "장사가 안 된다”며 "약국을 접을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서부이촌동 주민 영상 / 촬영·편집 = 정은비

서부이촌동에서 3층 건물을 소유한 이모(79)씨는 요즘도 폐지를 줍고 있다. 하루 평균 7000원 벌기 어렵다. 그가 소유한 건물 1층에 카센터를 제외한 모든 사무실이 비었다. 통합 개발 이후 나가기 시작한 세입자는 위험도 D등급을 받은 건물로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건물은 기울기 시작해 옥상이 옆 건물과 붙었다. 하지만 용산구청은 "지금은 D등급이 아니다. 경고문을 뗐어야 했는데 아직 못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그럼 저걸 왜 붙이고 위험 건물이라고 해서 세도 안 들어오게 하냐"고 말했다. 이 씨 빚은 20억이다. 한 달 이자만 700만원이다. 그는 " 통합 개발 이후 (지역 상권이 죽자) 장사가 안 된 세입자가 다 떠났다"며 "건물 보상을 약속 받고 대출을 끌어다 썼다. 하루 아침에 개발이 무산될 줄 몰랐다. (재건축 실패가) 얼마나 피 말리게 하는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서부이촌동에서 음식점, 도소매, 학원 등 점포를 운영하던 상가 영업소는 266개가 있었다. 시가 2013년 3월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중 100개 이상 사라졌다. 2013년은 용산 국제업무지구 복합 개발이 일방적으로 취소된 시점이다. 이후 주민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후 40여 개 영업소가 추가로 문을 닫았다. 용산 개발 이전과 비교해 서부이촌동 상가 절반이 사라졌다. 이마저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서부이촌동 주민 인터뷰 / 촬영= 이용우, 배동주 편집=정은비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전까지 코레일 업무지구에서 있던 한솔제지, 서울우편집중국 등에는 직원 3000여 명이 있었다. 이들이 점심이나 밤이 되면 서부이촌동으로 와서 식사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다. 용산 개발이 일방적으로 발표된 후 3000여 직원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후 서부이촌동 상가가 죽기 시작했다. 부동산 거래도 없었다. 시는 2007년 8월 31일부터 서부이촌동에서 집을 매매하는 사람에게 입주권을 주지 않았다. 용산 개발로 투기를 막기 위해서다

이렇게 부동산 거래는 8 년 동안 중단됐다. 집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되면서 아파트 가격은 반 토막이 났다. 여전히 회복이 안 되고 있다.

"당신이라면 이런 데서 살 수 있어?
독자 개발이라도 해야지"

서울시는 서부이촌동과 철도 정비창을 포함한 용산 개발이 어려워지자 이 지역 일대를 3개 구역으로 나눠 재건축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나섰다. 시 관계자는 "서부이촌동에 대한 미안함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구역은 3개로 나눴다. △이촌1구역 △이촌시범·미도연립(2구역) △중산시범(3구역)이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 됐다.

시는 그 미안함을 바탕으로 서부이촌동 지역 용도를 기존보다 2종 상향한 준주거지역으로 정했다. 상한 용적률도 190%에서 300% 높였다. 용적률 300%가 되면서 서부이촌동에는 35층 아파트가 세워질 수 있게 됐다. 시는 소형 임대주택을 지을 경우 에 한해 법적상한 용적률을 500%까지 높이도록 했다.

"누가 여기서 살 겠냐.
40년 넘은 건물 천지에
재건축은 당연"

하지만 시 계획을 두고 지역 주민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다. 대다수 주민은 물론 재건축을 원했다. 이촌1구역 추진위원회 한 관계자는 "누구라도 여기 와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겠냐"며 "40년 이 상 된 건물이 대다수인데 재건축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촌동 공인중개업자는 "건물이 노후화되고 보일러 수돗물 등 불편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라며 "재건축을 하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시가 구체적으로 재건축 계획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다. 현재 나온 수준으론 사업성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1구역 추진위도 시가 제시한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사업을 진행해도 사업성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에는 공감했다.

서부이촌동 주민 인터뷰 / 촬영= 이용우, 배동주 편집= 정은비

시 계획대로라면 재건축 사업성이 부족해 주민 분담금이 커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촌1구역만 해도 518세대가 있다. 용적률 300%를 줬다고 하지만 35층으로 층 수가 제한됐기 때문에 1대 1 입주가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시가 용적률을 500%까지 허용한다고 해도 층수 제한으로 이 용적률은 무용지물이 된 상황이다. 중산시범은 100m에 30층 높이 제한이 걸렸다.

다만 1구역 추진위 관계자는 "분담금 이야기는 아직 나올 단계가 아니다"며 "조합이 생기고 시공사가 들어오면 층수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 관계자는 "이 지역은 한강변관리기본계획에 근거해 층수 제한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불안했다. 한 주민은 "사업성이 낮으면 분담금이 많이 나오는데 그렇게 할 거면 (재건축을) 안 하는 게 낫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가난한 서민들이 대다수인 이 곳에서 분담금 이야기가 나오면 좋아할 주민은 한 명도 없다"고 전했다.

"재건축하라고? 땅 가격은
정상으로 되돌려 놔야지!"

"구청에서 아니라고 했다고? 부동산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땅 매입하는데 공시지가는 아주 깊은 연관이 있다. 아니라고 말했다면 정말 나쁜 사람이다." 서부이촌동에서 공인중개소를 운영하는 김모(45)씨는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다. 낙후된 서부이촌동 땅값이 부촌으로 유명한 동부이촌동보다 비싼 이유를 설명했다. 용산구청 관계자가 "공시지가와 땅 매입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한 말에는 한숨을 먼저 쉬었다.

그는 "이러면 문제가 두 가지 발생한다. 공시지가는 양도세 등 과세기준이다. 은행 하나 없는 서부이촌동 땅값을 높게 산정해 동부이촌동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둬가고 있다"며 "서울시가 땅 매입을 고민하는 2, 3구역 서민을 상대로 땅 장사를 하는 것 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재건축 추진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서부이촌동 1구역 공시지가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3.3㎡당 4800만원이 넘는 곳도 있다. 2구역과 3구역인 이촌시범과 중산아파트도 마찬가지다. 평당 공시지가가 3100만원, 2670만원을 넘는다. 부촌으로 유명한 동부이촌동은 이보다 훨씬 낮다. 동부이촌동 엘지한강자이 아파트 공시지가는 2700만원, 한가람 아파트는 2500만원 수준이다. 신동아 아파트는 1000만원 초반이다.

서부이촌동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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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이촌동의 주민들 / 촬영= 이용우, 배동주, 정은비

한 공인중개소 업자는 "서부이촌동 전체 서민은 용산 역세권 개발 계획이 나오면서 비정상적으로 오른 공시지가에 맞춰 세금만 엄청 빼앗긴 것"이라고 말했다. 서부이촌동에서 3층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이모(79)씨는 지난해 재산세로 1000만원을 냈다. 용산 통합 개발 전보다 5배 올랐다.

2구역과 3구역은 시유지다. 서울시로부터 땅을 매입하는 절차가 추진위 형성보다 먼저다. 하지만 공시지가에 따르면 이 땅은 3.3㎡당 2500만원이 넘는다. 이촌시범 재건축 추진위원회 한 관계자는 "주민들이 이 땅을 매입하려면 수억 원 토지 매입금을 내야 한다"며 "2구역과 3구역은 여전히 이 문제로 재건축 추진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3구역 추진위원회는 주민 87%가 동의하는 재건축 동의서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땅 매입 문제를 두고 서울시와 합의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시간이 길어지면서 추진위원장이 도중에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3구역은 오는 11월 5일 다시 추진위원장을 선출하기로 했다. 2구역은 현재 추진위가 없는 상황이다. 원래 있던 추진위원장이 집을 팔고 이촌동을 떠났다.

서부이촌동 인포그래픽

용산구청 관계자는 "2, 3구역이 땅을 매입하는 것과 공시지가는 아예 관련이 없다. 감정평가사가 평가를 다시 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그건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정확하게 말하면 주변 매매가 없었고 기준이 정확하지 않을 때 감정평가사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1구역은 2, 3구역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다. 1구역 추진위 관계자는 "우리한테 2, 3구역과 엮지 말라"며 "거기와 우리는 별개"라고 말했다. 2구역도 마찬가지였다. 시유지 땅을 매입하는 과정이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3구역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겠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땅 문제와 관련해선 주민과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촌1구역이나 이촌시범, 중산 아파트는 기존에 12층, 15층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지역이었다"며 "지금은 30층 이상 재건축을 할 수 있게 했다. 주민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 규제를 완화한 재건축 계획"이라고 말했다. 층수 제한으로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질문엔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시 관계자는 "지구단위계획은 사업성이 중점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35층으로 하면 분담금이 수억원까지 올라 갈 수 있다. 층수와 용적률 여유있게 주면 분담금은 절반으로 떨어질 수 있다"며 "그 지역 주민은 서울시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서부이촌동 주민은 억울한 측면이 많다. 그럼 시가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부이촌동은 원래 재건축 대상 지역도 아니었다. 시에서 한강르네상스라는 무리한 사업을 하면서 개발 지역으로 억지로 포함했다. 주민은 생각도 없는데 시가 부추겨서 재건축을 진행했고, 주민 사이에선 강제수용 당한다는 불안감이 많았다"며 "이제 와서 용산역세권개발이 (실패로) 끝났으니까 다시 재건축 하게 해줄테니 시 기준에 맞춰 하라는 것은 불합리해 보인다. 주민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